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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 심리학의 이해와 필요성


비교문화심리학, 문화심리학, 토착심리학의 뿌리

토착심리학을 정의하기 전에 유사한 분과로 자주 혼동되는 three big cultural psychologies인 비교문화 심리학(Cross-cultural psychology: CCP), 문화심리학(Cultural psychology: CP)그리고 토착심리학(Indigenous psychology: IP)을 구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심리학의 뿌리부터 살펴보자. 최초에 Wundt는 심리학이란 개념을 주장하며 심리학을 인문사회적 심리학과 자연과학적인 심리학 두 가지로 나누었다. 인문사회적 심리학은 folk psychology로, 인간의 문화, 종교 등에 관한 사고체계를 공부하는 분과인데 반해, 자연과학적 심리학은 행동, 인지 등을 공부하는 분과이다. 초기에 심리학은 프로이트, 융 등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사회적 계통이 주를 이루었지만, 심리학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자연과학적 심리학과 통계학을 바탕으로 한 실증적 방법론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인문사회적 심리학은 사장되었다. 이후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은 공산주의에 맞서 자본주의를 전파하고자 했고, 이를 용이하게 하고자 문화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게 된 것이 비교문화심리학의 발단이다. 반면 문화심리학은 인류학과 심리학의 혼합으로써, 문화를 인간 개인과 분리할 수 없다고 간주하고, 문화와 문화 사이의 차이보다는 단일 문화 속에서 영향을 받는 인간의 속성을 연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토착심리학은 주류학계가 서구의 편향된 시선으로 타 문화들을 연구하는 데 대한 반발에서 탄생하였다. 따라서 토착 심리학은 개별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별 고유한 특성을 기반으로 한 ‘토착적인’ 심리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각의 차이를 단순화시켜 설명하자면, 비교문화심리학은 단순히 문화를 독립 변수로, 인간의 행동을 종속 변수로 상정하고 문화차에 따른 인간의 행동을 비교한다. 반면 문화심리학은 앞서 말했듯이 독립 변수와 종속 변수의 구분 없이 문화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한 인간행동과 그 속성을 연구한다. 마지막으로 토착심리학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단일문화에서 대중들이 쓰는 언어, 종교 등에 기반한 심리 속성들을 추출해내어 각 문화마다의 토착심리학 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쉬운 예시로, 비교문화 심리학의 경우 IQ테스트를 – 한 문화에서 개발된 개념을 가지고 타 문화에 적용하고, 그 개념의 적용 정도를 문화 간에 비교하는 것- 들 수 있고, 문화심리학의 경우 단일 문화의 속성을 알아내는 Markus와 Kitayama의 Independent self, Interdependent self, 토착심리학의 경우 정(情), 한(恨) 등의 개념화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비교문화심리학, 문화심리학, 그리고 토착심리학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 기준점이 대체로 모호하다. 실제로 문화심리학과 토착심리학을 동일시하는 학자도 있는 반면, 둘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토착심리학 및 문화심리학이라는 분과가 생성된 지 20년도 채 안되었다는 점과, 그동안 주류 심리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논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토착심리학의 필요성

그렇다면 토착심리학은 왜 필요한가?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현재 주류심리학은 “WEIRD”하기 때문이다. “WEIRD”란 Western, Educated, from Industrialized, Rich, 그리고 Democratic의 줄임말로써, 현재 심리학계 대부분의 이론이 WEIRD한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모든 문화에 일반화할 수 없다는 비판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서구 문화 내지는 미국문화와 질적으로 다른 문화에서 자라난, 따라서 다른 사고체계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주류심리학계가 주장하는 이론의 틀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토착심리학 발전 계기의 핵심이다.

따라서 토착심리학은 보편적으로 ‘주류’라고 받아들여지는 심리학 또한 일종의 토착심리학인 “미국인 심리학”이라고 주장하고 단일 문화권, 특히 WEIRD한 문화에서 파생된 WEIRD psychology의 무분별한 적용에 반대한다. 토착심리학은 먼저 각각의 문화에 알맞은 토착심리학 체계의 분리와 발전을 주장하며 궁극적으로는 ‘Universal Psychology’, 인류 보편의 심리학으로의 통합을, 즉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지향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빠질 수 없는데, 여기서는 자주 인용되는 예시인 Kohlberg의 도덕발달이론의 범문화적 적용 불가능성을 다루겠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도덕발달에는 각각 보상과 처벌, 사회적 시선과 질서, 그리고 개인의 양심에 따라 도덕적 행동의 촉진 혹은 제지시키는 도덕발달의 3가지 수준, 6가지 단계가 존재하며, 이 과정은 인류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를 동약 문화에 적용시켜볼 경우, 성인군자라 불리는 공자마저도 도덕발달과정의 제2수준밖에 미치지 못한다. <논어>의 자로편에 섭공이라는 이가 “우리 고을에는 자기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걸 고발할 정도로 착한 이가 있다.”라고 하자 공자는 “우리 마을의 착한 아는 그와 다르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의 잘못을 숨겨준다.”라며 “효”에 기반한 사회 질서 속에서의 규칙 준수를 도덕적 행동의 근거로 보는데, 이는 콜버그 이론에서 사회적 질서에 기반해 도덕결정을 내리는 제2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기존에 서구에서 “인류보편적”이라고 섣불리 간주했던 이론들을 각자의 문화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토착심리학의 주 골자이다.

뿐만 아니라 Individualism vs Collectivism 담론마저도 서구의 시각에서 동양을 단순화시켜 “collectivism”이라는 덩어리로 묶어 놓은 개념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누미야 요사유키(2009) 등의 주체성-대상성-자율성 자기의 척도로 한중일을 비교했을 때 세 국가는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일본만이 “Collectivistic”한 문화에 맞는 자기관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Hofstede가 IBM에서 문화차원 연구를 진행할 당시 동양권의 회사원들이 대게 일본인들만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동양” 문화 라는 것이 실제로는 일본의 문화였다는 설명이 있다. 따라서 Individualism vs Collectivism 담론은 동양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동양의 모든 문화에 적용시킨 서구의 자기중심적 단순화의 일례이다.

토착심리학의 방향

멀리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토착심리학은 이제 논의되기 시작한지 20년이 채 안되어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한 심리학 분과이기 때문에 그 목적 앞으로의 발전 방향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중요하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그 중 Adair(2006)과 Berry(1989)의 내용을 혼합하여 요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여 소개한다.

토착심리학을 비롯한 대다수의 심리학 분과의 고등교육은 대게 서구권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토착심리학의 시작단계도 외국에서 외국의 관점으로 공부를 하는 importation의 단계이다. 그 뒤 석사/박사 학위를 마치고 난 심리학자들이 원래 자신의 문화권으로 돌아와 배웠던 것을 도입해보는 implantation 단계, 적용해보니 문화차 때문에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이론에 수정이 필요함을 깨닫고 이론을 토착화시키는 indigenization 단계, 그리고 서구 이론의 토착화 단계를 넘어 문화 내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문화에 적절한 이론을 자가생산하는 autochtonization 총 네 단계가 Adaire가 설명하는 토착심리학의 발생 단계이다.

Berry는 심리학의 관점을 emic, imposed etic, 그리고 derived etic 세 가지로 나누고 토착심리학은 derived etic의 관점을 지향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emic은 한 문화 내에서의 관점으로 해당 문화를 공부하는 것, imposed etic은 한 문화의 관점에서 다른 문화를 공부하는 것, derived etic은 emic하게 연구된 각 문화의 심리를 비교하는 것을 뜻한다. 단순화 시키면 emic이 최초에 존재하고, imposed etic은 emic한 연구를 타 문화권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인데 반해, derived etic은 둘, 혹은 그 이상의 emic한 연구들끼리의 비교를 포함한다.

토착심리학에 대한 비판

1. 문화의 범위

토착심리학이 각 문화를 잘게 부숴서 보편적 심리학으로의 통합을 이루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문화권의 범위는 얼마나 넓어야, 혹은 좁아야하는가? 혹자는 문화를 불교권, 이슬람권, 기독교권으로 나누기도 하고, 토착심리학은 각 나라를 단일 문화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모든 문화를 조사하여 하나로 합쳐 인류보편적 심리학을 만들겠다는 말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인 얘기일 뿐인것 아닌가?

2. "비과학적" 사조

토착심리학은 문화와 인간을 불가분한 존재로 보고, 질적 연구방법을 사용하는 등 인류학적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주류학계에서는 "이게 심리학이 맞는 것이냐", "인류학이 아니냐"등의 비판이 있다.

3. 주류학계의 외면

토착심리학의 연구 주제는 주류인 서구의 관심사와 동떨어져있다. 따라서 세부적인 토착심리학 연구들은 논문의 인용도 등의 수치도 적고 애초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심리학을 예시로 "한", "정" 등의 개념은 그것을 느끼고 함께할 줄 아는 한국인들에게만 신기하고 재미있는 연구지, 정작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조차 가지 않는 연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토착심리학을 공부하던 중 Enriquez의 필리핀 심리학이나 Doi의 일본인 심리학에 관한 연구 결과를 몇몇 슬쩍 보았는데, 이해도 잘 안가고 재미도 없었다….

4. 언어의 장벽

다시 "한" "정" 등을 예시로 문화 특징적인 감정이나 개념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그것들이 속하는 문화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사전적인 의미를 도출해낸다고 해고 그 개념을 진정 느끼고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문화 간의 연구가 어려울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나가는 글

바로 위에서 나열했듯이 분명 토착심리학에는 한계가 있다. 방법론적인 면에서도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하고, ‘토착심리학이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조차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현재 심리학계의 서구중심적 흐름은 ‘인간 전체’를 알고자 하는 심리학의 본질적 관심사를 퇴색시켜 한 쪽으로만 치우친 학문을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에 반대하며, 토착심리학과 질적연구의 발전을 기대하고, 또 기여하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 참고문헌

이누미야 요사유키 (2006), 주체성-대상성 자기와 긍정적 환상의 관계에 관한 한일비교 연구, 한국심 리학회지:일반, 2009, 28(1), 115-146

최상진, 『한국인의 심리학』, 학지사(2011)

한성열 외, 『문화심리학』, 학지사(2015

Adair, J. G. (2006). Creating indigenous psychologies: Insight from empirical social studies

of the science of psychology. In U. Kim, K. S. Yang, & K. K. Hwang (Eds.), Indigenous and cultural psychology: Understanding people in context (pp. 467–485). New York, NY: Springer.

Berry, J. W. (1989), Imposed Etics-Emics-Derived Etics: The Operationalization of a Compelling Idea,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logy, 24(6), 721-735

Greenfield, P. M., (2000), Three approaches to the psychology of culture: Where do they come from? Where can they go?, Asi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2000), 3: 223-240

Kim, U.,Yang, K. S. , & Hwang, K. K. , (2006), (Eds.), Indigenous and cultural psychology: Understanding people in context . New York, NY: Springer.

- 발제조: 이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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