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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모성신화, 반사회적 성격장애



우리 사회에서 반사회적 성격 장애는 흔히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로 불리며 뉴스나 영화의 자극적인 소재가 된다. 연쇄살인과 같은 잔혹한 범죄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대중들은 가해자들의 비인간적인 면모와 그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든 환경에 대해 많은 가설을 세우곤 한다. 특히, 가해자들이 부모와 안정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는 일화들은 양육 과정에서의 애착 문제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야기한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곤 한다.


발제자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개인적, 사회적 병인에 대하여 논의해보고자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발제 소재로 택했다(실례를 다루고 싶었으나 공개된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영화 중에서도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영화적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은 영화를 택했다). 본인이 다니던 학교 체육관을 봉쇄하고 대량학살을 저지른 케빈. 우리는 그를 통해 어떤 병인들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개인적 측면에서 본다면 케빈의 공격적이고 까다로운 특질을 들 수 있다. 케빈은 영아기 때부터 끊임없이 운다. 아동기에는 자신이 먹던 음식을 벽에 던지고 어머니인 에바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갓 태어난 여동생에게 물을 뿌린다. 또한 청소년기가 되어서도 (에바의 추정이지만) 여동생이 아끼던 애완동물을 죽이고 여동생의 한 쪽 눈을 실명하게 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아이의 기질은 선천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순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까다로운 아이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선천적인 기질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기질은 양육자의 양육 태도와 상호작용하면서 둘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때문에 양육자의 양육 태도는 아이의 성장에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케빈의 공격적인 행동 뒤에는 그의 기질뿐만 아니라 모성이 결여된 에바가 있다. 영화는 케빈과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케빈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에바를 보여준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케빈을 낳은 그녀는 도시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육아를 위해 한적한 교외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에바는 케빈이 울 때 한 번도 품에 안고 달래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울음소리를 공사장 소리로 덮어버리거나 케빈에게 폭언을 퍼붓고는 했다.


그런데 과연 케빈이 대학살을 저지르게 된 주요인이 에바에게만 있는 것일까? ‘모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성은 종족 번식 욕구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애정일 수도 있지만 순수하게 사회적으로 구성된 일종의 요구일 수도 있다. 에바는 임신한 사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만 임산부 요가 수업에 참여하는 등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임신으로 인해 포기해야만 했던 여행가로서의 삶에 대한 그리움, 현재의 지루하고 불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증오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과 끊임없이 갈등한다. 자식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애정이 결핍된 에바를 이해하지 못한 남편 프랭클린은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하고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전혀 ‘자연스럽’지도 ‘마땅하지’도 않은 모성에 대한 요구와 독박 육아 속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 모두가 고통 받는다. 학교 친구들을 상대로 한 케빈의 끔찍한 범죄는 어쩌면 이 ‘모성 신화’가 낳은 괴물일지도 모른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위험 기제의 첫 번째 고리는 선천적인 기질이다. 기질이라는 위험요인에 불안정 애착을 낳는 양육 환경은 증강 요인이 된다. 양육 환경은 다시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적 담론과 사회 경제적 조건 등과 상호작용하며 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케빈의 범죄 행위가 그저 케빈 본인이나 케빈의 어머니 만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그저 무시무시한 개인이 가지는 예외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장애임을 인식해야 한다.

- 발제조: 박려명, 김수빈, 조수민, 양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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